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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한국

한국지리학의 발달은 어떻게 했을까?(1탄)-관찬지리지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리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근대 조선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지리와 지도화는 주로 특정 지리적 정보를 기록하고 축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리적 지역은 정부출연토지와 민간출연토지로 구분되었다. 고려시대 삼국지의 지형을 편찬한 것을 시작으로 북한 전역에 남조선 정부가 지원하는 지형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리학은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학문 분야로 1945년 이후에야 성립되기 시작했다.


고려사의 지리적 특징은 조선 초 '편찬'으로 편찬되었고, 1432년(세종 14)에 신기도사가 완공되었다. 『지리신문』은 조선왕조의 지리 편찬을 보여주는 사례로 『세종의 성』으로 발간되었다. 지리편찬사업은 국가 거버넌스에 없어서는 안 될 자료 수집을 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지역정보 종합 수집으로서 국가사업으로서 지속적으로 수정·보완되고 있다.그 후 1770년(영조 46)에 『동문별향』과 『여예별향』이 간행되었고, 1908년(5월 41일)에는 27권으로 간행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사한사」의 출판이 유행했다. 신의 참가를 포함하여 해동제국의 지도하에 있는 일본국(※ )과 강석주(※Back&이동국사 열거) 등 '사원에서'의 지원을 받고 있다.왕의 지리적 사실과 기술 문헌은 학자에게 긍정적인 학문적 종파를 평가한다.영향을 주다.사찬지지의 발간은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 활발해졌다.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는 일본과 유구국의 지지와 지도를 포함한 지리지로 높이 평가되며,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는 종래의 나열식 서술이 아니고 지리적 사실을 문헌을 이용하여 고증한 새로운 지리적 역사서로 평가되며 실학파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용 학자들은 중국을 통해 서양 학문을 간접적으로 소개하고 받아들였다.한편 이중환의 《택리지》와 정약연의 《강역고》는 학자들이 펴낸 대표적인 지리서적이다. 이중환은 1750년대 문예 대작인 '택리지'를 썼는데, 함경도지방과 전라도를 제외한 농촌의 새로운 변화에 맞춰 농업과 상업, 교통이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이중환은 '택지'를 통해 인간, 자연, 지역, 장소의 지리적 개념을 어려움 없이 발전시켜 현대 지리를 확립했다. 최한기와 김정호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최한기는 초기 학자들의 단편적인 지리적 이익과 성과에 비해 서구의 지원과 지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학자다. 『대동지지』는 경도(京都)·부(府)·군(郡)·현(縣)의 지지에 한정되어 있던 종래의 지지에 계통지리적 성격을 띠는 교통·통신을 다룬 정리고(程里考), 현재 낙질로 돠어 있는 산수고(山水考)와 변방고, 방여총지(方輿總志) 등을 추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동지지』는 총론과 지방지를 포함하는 현대적인 한국지리지에 접근하였고, 역사지리적 내용을 다룬 방여총지는 종래의 역사와 지리의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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