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지도제작 사업은 세종대에 천체관측을 위한 간의(簡儀)와 천문용 시계에 해당하는 혼천의(渾天儀) 사용이 가능해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종 9년(세종 9년)에 양성로와 정안 등의 이름으로 세종 이후의 지도 제작 작업이 정부에 제출되었다. 이 지도는 100만분의 1의 작은 규모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지도다. 조선 후기 정상기의 『동국지도』는 18세기 중엽으로 나뉘었다. 지도는 정확하고 자세하게 산과 여름을 표시하여 교통로, 봉수, 군현, 막사, 수영 등을 기록하고 있다.
'대동지지'의 저자 김정호는 1834년 '청구도'를, 1861년 '대동여지도'를 출간했다. 전자는 상하2권, 후자는 22첩의 절첩 형식으로 되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同一路)는 16만분의 1의 대규모 지도로 평상시의 약 42만분의 1의 지도를 바탕으로 수정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우리지도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의 편집과 제작에 있어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권근(權根)이 1402년(태종 2)에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에서 수입한 세계지도 2개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에 최적의 세계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1747년(용조 23)에 쓴 춘해당(春海堂), 1666년(경상 9년)에 쓴 김수홍(金壽洪)의 판화는 조선 후기에 쓰여진 세계지도다.조선 후기에 작성된 세계지도로는 1747년 (영조 23)에 작성된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 연대가 확실하지 않은 「여지전도(輿地全圖)」, 김수홍(金壽弘)이 1666년(현종 9)에 작성한 목판본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總便覽圖)」 등이 있다.
이 지도들은 시대적으로 마티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와 페르비스트(Verbiest,F.)의 「곤여전도(坤輿全圖)」과 같이 직접적인 연관성이나 열등감은 없다. 마테오 리치, 마테오 리치와 페르비스트의 세계지도를 비롯한 현대식 세계지도가 널리 보급된 것은 김정호의 「지구전후도」의 중간(1834)과 정부에서 중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비스트의 「곤여도(坤輿圖)」의 중간(1861)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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